밀레니엄 새해가 오면 모든 전산이 다운 될 거라며 불안했던 1999년 12월 31일이 기억난다. 그랬던 세기말이 벌써 20년 전이고, 그런 루머에 쉽게 흔들리는 초딩이었던 나는 이런 으른이 되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9시. 일출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그 태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실패한자의 변명이다^<^
1월 1일 새해, 무얼 해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까 누운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오랜만에 물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설렁설렁 준비하고 1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내가 늘 가는 곳은 고양시 화정에 있는 함흥냉면집이다. 냉면값이 5~6천원이던 고등학생 시절 처음 갔던 곳으로 10년 동안 조금씩 값이 올라 현재는 냉면 1그릇에 9,000원을 받고 있다.
면이 질기지도 않고 엄청 풀어지지도 않은, 적당히 톡톡 끊기는 씹는 맛이 좋아서 자주 가는 곳이다.
2020의 첫 식사 함흥 냉면. 같이 나오는 따듯한 육수도 좋다. 차가운 냉면을 먹고 따듯한 육수를 먹으면 배탈나기 딱 좋으니 주의해야 한다는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의 바깥 날씨는 제법 추웠지만 이열치열이라는 조상님의 지혜를 떠올리며 한그릇을 비웠다. 원래 냉면은 겨울 음식이라고 했다.
식후에는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카페에 들어갔다. 새 해의 계획을 짜기로 했다. 30년간 실패해온 빅데이터를 토대로 실행 가능한 것만 계획하기로 했다.
저녁은 훠궈가 살짝 땡겼지만 새해부터 타국의 음식이라니 애국심에 좋지 않다며 근처에 보이는 순남 시래기집으로 들어갔다. 밋밋한 시래기국의 맛이 아주 건강한 기분을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순남이라니, 전남과 순천 근처의 어딘가일 것 같은, 음식이 맛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지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검색해보니 순남은 함흥과 마찬가지로 이북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원도에서 더 위에 있는 강원도에 위치했다고 한다.
우리는 1인분에 1만원씩인 꼬막무침 정식을 2개와 막걸리 대짜를 주문했다. 꼬막무침을 한 입 먹고 나니 맛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1인 1정식을 시키면 시래기국과 밥은 리필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머지 반찬은 뷔페처럼 가져다 먹으면 된다.
솔잎이 솔솔 쌓인 꼬막무침이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양도 많다. 배가 불러 더이상 못먹는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도 꼬막무침은 아직 남아있었다. 막걸리를 작은걸 먹었어야 했나보다.
즐거운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2020 새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해가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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