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네 시장에 갔다가 해산물 가판대에서 갑오징어를 발견했다. 2년 전에 울릉도 여행 당시에는 울릉도에 오징어 씨가 말라서 오징어배조차 띄울 수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는데 요즘은 집나간 오징어들이 다시 돌아와준 모양이다.
갑오징어 3마리에 1만원을 주고 사왔다. 갑오징어회의 그 부드럽고 감미로운 식감은 이를 맛본 누구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중 하나다. 갑오징어와 함께 집에 도착해 당장에 회를 쳐서 먹고 싶었으나 '다른 해산물들과 한 도마를 공유한 오징어니 회는 위험하다'는 동거인의 강력한 항의에 고민하다가 숙회를 데쳐보기로 했다.
순조롭게 결론을 도출한 후 유튜브에서 오징어 손질법을 검색했다.
오징어 숙회에서 오징어 손질은 기호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내장과 눈깔, 입을 제거하고 데치기,
다른 하나는 그냥 통째로 데치기이다.
나는 첫번째로, 내장과 등등을 제거할 용기가 없었고 두번째로는 내장파이기 때문에 고심끝에 '그냥 데치기'를 시전하기로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온 오징어를 헹구기 시작하면서야 알았다. 내장은 제거해서 주셨다는걸. 내장이 이미 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아까 없던 용기가 샘솟아 내친김에 눈깔도 떼네고 입도 쏙 빼낼 수 있었다. 익힌 뒤에 빼는 것 보다는 지금 빼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오징어회만 사먹어봐서 갑오징어에 실제로 방패같은 뼈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새로운 경험은 늘 좋은 것이다.
갑오징어 데치기
오징어 숙회의 묘미는 살짝 담구는 것이다.
- 깨끗이 씻어서 팔팔 끓는 물에 약 30초.
그거면 된다. 그러면 겉바속촉이 아닌 겉익속회 -겉은 익고 속은 회다- 의 오징어 숙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 전에 오징어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빨판을 잘 청소해야 한다. 하지만 갑오징어는 숏다리이므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청소할 빨판도 적으니 참으로 고마운 생물이다.
완성된 갑오징어 숙회
온전히 내 힘으로 손질한 것은 아니지만 늘 엄마가 해주시던 오징어 숙회를 내 힘으로 해내다니 한결 어른이 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오징어 위에 부추를 뿌리는 것은 백주부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고 배웠다.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하셨는데 나의 디테일은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술을 줄이고자 맥주를 곁들여 먹었는데 역시 회에는 소주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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